본문 바로가기
관광학이론

관광의 세계사와 한국 관광의 발달사

by 슈퍼초이 2022. 10. 24.

제 1장 관광의 발달

제 1절 관광의 세계사

 

1. 기원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관광객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여행한 것이 기록되어 있고 이집트 룩소의 성전 벽에는 헤셉스트 여왕이 고대 푼트까지 유람선 여행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 서적들은 바이킹족, 마르코 폴로, 콜럼버스와 같이 유명한 여행가들을 기술하고 있다. 한편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서유럽, 아프리카, 중국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선사시대 이전의 여행객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2. 로마 시대
로마제국 시대에 부유한 시민들은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 로마 정부가 광범위한 도로망을 구축하여 5~6마일마다 새 말로 바꿔서 이동할 수가 있었고 전 제국을 통일한 단일통화체제는 식량과 숙박 제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Pax Romans가 여행객들의 안전을 보장한 점이었다.
여행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교통 체제와 평화 그리고 정치적 안정이 있어야 한다. 여행 중에서도 특히 위락여행에는 경제적 번영과 여가가 필요하다. 로마제국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부유층은 사라지고 도로는 파괴되고 지방에는 도둑이 득실거렸다.

3. 암흑시대
암흑기에도 여행은 이루어졌으나 위험하고 힘들었다.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는 이 시기에 나온 것이며 중노동이라는 의미를 지닌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농부들은 거의 그들의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소수의 상인과 성직자들만이 여행을 했고 그들이 여행할 때는 도보로 하거나 험한 곳은 우마차를 이용하였다.

4. 중세 이후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여행이 보다 일반화되었다. 역마차, 증기선, 철도 등 교통수단의 발달은 여행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고 기술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인 변화가 여행의 증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점차로 돈과 여가를 소유한 중간계층이 대두하게 되면서 답답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의 욕구는 바닷가 휴양지로의 이동을 촉진했다.

5.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 자동차와 버스가 등장함에 따라 보다 좋은 도로가 필요하였고 마침내 사람들은 미국 전역으로 차를 몰고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대 말 최초로 대서양 횡단 여객기의 출항과 함께 빠르고 안락하고 저렴한 해외여행이 가능해졌다.
지난 50년간 여행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증가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것이지만 또한 경제적인 번영과 사회적인 변화도 여행 증가에 크게 공헌하였다. 과거에는 부유층만이 위락여행을 즐겼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여행을 많이 한다. 산업사회에서 보통 사람들 또한 여행에 소비할 돈을 가지고 있다. 많은 여성이 직업을 가짐으로써 여행을 위한 추가적인 수입 원천이 발생하였다. 연간 유급휴가는 사람들에게 여행할 수 있는 여가를 제공한다.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되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어느 때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에게 여행은 좋은 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일상적인 기대가 되었다.
또한 최근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은 여행지와 여행상품에 관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하고 여행상품을 선택하기가 용이하게 되어 관광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제 2절 한국 관광의 발달사

1. 삼국시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도 일부 특권틍의 여행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임금이나 관료 및 승려나 학생으로 대표되는 지배계층들은 외교나 학문 탐구, 수양을 위해 국내 명승지 및 국외로 나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여행목적지는 중국 본토에서 서역,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였다.
정기적, 공식적인 여행은 주로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인 목적으로 신년하례, 화친, 서약, 세공, 왕위 책봉 등의 동기나 목적이 대부분이었고 비정기적, 비공식적인 여행은 산천 구경, 신체 단련과 수렵, 말타기, 연회, 가무 관람 등이었다.
한편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불교문화권으로서 여행이나 관광 활동도 불교가 정착되면서 산중의 사찰을 찾는 종교적인 목적의 순례 관광이 생겨났다. 종교적 의미에서 사찰의 참배와 유명사찰의 순례는 고대 유럽에서의 신전과 성지참배와 유사한 성격을 띠는 원시 관광 형태라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는 청해진에 여러 곳의 청해관이 설치되어 무역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신라, 당나라, 일본, 중국의 무역선이 정박하고 상인들을 유숙, 접대하는 숙박시설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이것은 중국 산둥반도의 등주에 신라, 발해 사신들을 유숙, 접대하던 신라관, 발해관이 운영된 시기와 비슷하다.
삼국시대의 관광 형태는 일상 생활권을 벗어난 인간의 단순한 장소적 이동에서 출발하여 종교의식에의 참가, 무속 신앙적인 산신각, 신목사당 등의 탐방, 사찰 행사 또는 민속행사에의 참관, 신라시대의 화랑도에 의한 심신 수련 여행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여행은 일반적으로 봄, 가을철에 행해졌고 여행 기간도 5, 7, 10, 50일로 다양하였다.

2.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주요 도시와 사찰을 연결하는 도로가 생겨났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이것이 더욱 발달하여 전국 22개의 도로망과 528개에 이르는 역참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국민의 이동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신분적 차별이 철저하여 여행은 귀족과 특권계층에 한정되었다. 그 당시 귀족 자제인 학생은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국내외로 유학 및 사냥, 뱃놀이, 격구, 바둑, 활쏘기를 즐겼다.
고려시대에는 외국 사신들의 숙소로 신장관을 운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댓글